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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성성, 통찰

2023 년 5 월 13 일

제 826 호

심판 – 단죄 , 천주는 하실 수 있지만 , 나는 그러면 안 된다 .

하지만 망하지 않기 위해서 , 나는 판단 – 분별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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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 ‘ 코멘트 ’ 에서 성비오 10 세회가 1988 년에 설립자가 취했던 영웅적 입장을 다시 한번 취할지도 모른다는 비현실적 희망을 내비쳤으니 , 1988 년은 신덕의 생존을 위해 성비오 10 세회 설립자가 로마의 노골적인 금지에 맞서서 신덕을 수호하고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사제 4 명을 주교로 서임한 때였다 . 아아 , 무모한 환상에 젖느니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더 낫다 . 현실을 보건대 , 지난 성주간 건립성체 첨례 때 남부 독일 자이츠코펜 (Zaitzkofen) 에 있는 성비오 10 세회의 사제 신학교에서 성유를 축성하는 주교 예식을 , 가톨릭 전통의 확실하게 유효한 양식이 아니라 새 교회의 의심스러운 양식에 따라 성성된 주교 가 직접 거행했다 .

자 , 새 양식이 자동으로 무효 , 즉 모든 경우에 무효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 1960 년대와 1970 년대에 2 차 바티칸 (1962-1965) 의 여파 및 그 이름으로 , 교회에 강요된 모든 새로운 성사의 양식처럼 , 그것은 정신과 본성이 모호하다 . 다시 말해서 , 그것은 천주의 전통과 인간의 현대성 모두에 열려 있다 . 예를 들어 , 우리 주님의 교회는 군주제이지만 새 양식에서 그려진 주교는 정신적으로 민주적이다 . 그래서 새 양식은 새것과 옛것을 모두 포함하고 어느 것도 배제하지 않도록 설계되었으니 , 공의회 혁명이 성공하려면 그래야 했다 . 만약 오래되고 참된 종교가 너무 확연하게 배제 되었다면 , 천주교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을 것이고 , 혁명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요 , 반면에 공의회주의라는 현대주의 종교가 충분히 포함 되지 않았다면 , 혁명도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

따라서 모호함은 유행이었고 , 여전히 그런즉 , 이는 믿는 가톨릭 신자들을 비탈길에 두어 타락시키고 믿음을 잃게 하기 위함이다 . 만약 어떤 전통 천주교인이 후온더 (Huonder) 주교가 온당하게 성성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 대답은 “ 오 아니오 , 새 양식은 완전히 유효하오 ,” 인 반면 , 현대의 천주교인이 후온더 주교가 전통 주교처럼 행동함으로써 공의회를 배신하고 있다고 불평한다면 , 대답은 “ 오 아니오 , 그는 그가 하고 있는 일을 하기로 사전에 교황과 합의했소 ,” 이다 . 그리고 “ 선량한 ” 주교 자신도 의심할 여지 없이 로마에 있는 교황과 스위스에 있는 주교의 전통을 동시에 응대할 때 그 어떤 모순도 깨닫지 못한다 . 그렇지만 모호함은 천주의 것이 아니다 .

오늘날에도 여전히 , 수백만 가톨릭 신자들에게 문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으니 , 수 세기의 근대 철학과 자유주의와 종교의 자유는 그들의 정신으로부터 꾸준히 , 적어도 종교 문제에서 현실에 부합하고 , 단일성을 강제하며 , 모순을 배제하는 객관적 진리에 대한 모든 감각을 지워 왔다 . 현대인에게 , 그런 ‘ 진리 ’ 는 오류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폭정 , 자유의 박탈 , 인간 존엄성의 거부 등이다 . 여기 유명한 혁명의 영웅인 토머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 이 1800 년에 친구에게 “ 나는 천주의 제단에서 인간의 정신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정에 대한 영원한 적대감을 맹세했네 ,” 라고 쓴 글이 있다 . 인용문은 그의 나라 수도에 있는 제퍼슨 기념비 속에 보관돼 있다 .

분명히 말하건대 , 자유가 진리를 섬기는 대신 진리가 자유를 섬기게 되고 있는 문제는 어제 혹은 작년에 시작된 게 아니다 . 그것은 적어도 마르틴 루터 (1483 – 1546), ‘ 최초의 근대인 ’( 피히테 (Fichte)) 까지 거슬러 올라감이요 , 그는 가톨릭 진리에 대항하여 그의 열화와 같은 ‘ 나 – 인간 !’ 을 토해내어 , 가톨릭교회는 처음으로 정의돼야 하는 , 천주로부터 온 신덕도리에 관한 진리들을 정의할 전체 공의회가 필요했으니 , 왜냐하면 , 신덕도리에 관한 진리들이 인권을 편드는 주관성의 부상으로 지극히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우리의 현대 세계가 시작된 곳이 이 지점이니 , 현대 세계는 천주께 대한 도발에 아주 깊이 몰두해 있다 . “ 난 여기에 서 있다 , 다른 건 할 수가 없다 ,” 고 루터는 외쳤다 . 그래서 혹시 후온더 주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모순을 깨닫지 못했기에 전혀 비난받을 수 없는 걸까 ? 교황 베르골리오도 SSPX 내에서 트로이 목마로서 행동하도록 후온더 주교에게 위임했기에 전혀 비난받을 수 없는 걸까 ? SSPX 의 상부에 있는 르페브르 대주교의 후계자들도 트로이 목마를 인식하지 못했기에 조금도 비난받을 수 없는 걸까 ? 어쩌면 … 천주만이 모든 것을 아시니 , 백성들에 대한 천주의 판단은 그르칠 수 없다 . 나로 말할 것 같으면 , 저들의 주관성을 판단할 필요는 없지만 , 내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 나 자신 열교인 개신교도 이 아니라 천주교인으로서 죽기 위해서 , 최선을 다해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할진저 .

원문 링크 : https://stmarcelinitiative.com/consecrations-ins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