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년 12 월 2 일
인간은 잠시 현실을 억누를 수 있지만 ,
천주의 얼굴에 감도는 슬프고 부드러운 미소 .
한 독자가 교회 , 성비오 10 세회 , 그리고 이른바 ‘ 저항 ’ 운동의 최근 역사에 관하여 예리한 질문 몇 가지를 보내왔다 . 언젠가 자모신 교회가 정신을 차리면 , 이미 조용히 그렇게 하고 있듯이 , 그림자와 어둠은 흩어지고 , 진리와 애덕 속에 역사가 활짝 열릴 것이다 . 한편 여기 몇 가지 답변의 밑그림이 있다 .
1 주교님은 어떻게 ‘ 저항 ’ 을 위한 그 어떤 조직에도 반대하실 수 있는지요 ? 어떤 가톨릭이든 그것 없이 번성할 수 있을까요 ?
‘ 저항 ’ 의 힘은 첫째는 진리이고 , 둘째로는 2 차 바티칸의 혁명에 저항하는 다양한 소규모 단체들 사이의 사뭇 느슨한 연결이다 . 천주교인들이 상부의 불충실한 권위에 너무 순종했기 때문에 그 혁명은 가톨릭교회 대부분을 잽싸게 압도했다 . SSPX 대부분도 2012 년에 급속도로 무뎌졌으니 , 이는 SSPX 의 사제들이 상부의 공식 지도자들의 권위를 너무 존경한 연고인즉 , SSPX 공식 지도자들은 배교한 로마와 다시 합류하기를 원했다 . 그들은 더 이상 르페브르 대주교처럼 참된 교회나 참된 신덕을 섬기지 않고 , 자신을 섬기고 있었다 . 반면에 , 저항단의 작은 주머니 하나를 손에 넣는다고 해서 반드시 두 번째 주머니도 손에 넣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러니 천주께서 당신이 정하신 때가 되어 가톨릭 조직을 복구하기로 하실 때까지 신덕은 살아남을 것이다 .
2 1990 년대 중반에 배교한 로마 관리들에게 속은 SSPX 지도자들은 개인적 야망에 이끌린 것이었을까요 ?
늘 있음직하지만 , 그들의 문제는 오히려 교회의 위기를 해결할 천주의 수단에 대한 믿음의 부족과 그것을 해결할 인간적이기만 한 바티칸 정치에 대한 과도한 신뢰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 대주교와는 달리 , 그들은 세계적 위기의 신성하고 종말 이전의 차원을 파악하지 못한 채 , 그것을 상대적으로 사소하고 세속적인 용어로 이해하여 과녁을 아예 놓치고 있다 . 늘 교회의 전면적 붕괴를 깊이 생각하는 르페브르 대주교와 대조해 보라 . 역시 2 차 바티칸 공의회가 초래한 교회와 세계의 보편적 몰락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있는 비가노 대주교와 비교해 보라 .
3 1994 년 총회 때 SSPX 지도자들의 이 부족함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었는지요 ?
증거라 , 있었지만 ,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다 . 그 총회 참석자들은 매우 위험한 환경 속에서 천주의 영광과 영혼 구원을 위해 거대한 전쟁을 벌이는 성숙한 전사라기보다는 게임을 하는 순진한 아이들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 구스타부 코르상 (Gustavo Corcao) 은 말하기를 , 악을 믿으려면 성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 그 총회의 친애하는 경건한 젊은 사제들은 시간의 무게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
4 주교님 보시기에 , SSPX 순응파와 SSPX 저항파의 두 진영이 서로 갈라진 때는 언제였는지요 ?
확실히 1980 년대에 분열의 요소가 이미 존재했다 . 아마도 그를 제거하려고 , 에콘에서 5 년 동안 교수로 있다가 1982 년에 , 25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서양 너머로 파견된 한 사제를 나는 알고 있다 . 젊은 신학생들은 일찍이 연로한 대주교로부터 SSPX 를 인수할 것을 예견한 자유주의자들에게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 대주교는 그 시대에 경이로운 사람이었지만 , 순응파에게는 로마의 근대주의자들의 무자비한 비난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시대에 뒤처지게 되고 있었으니 , 로마의 근대주의자들은 교회의 진정한 권위로 보이고 언제나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였다 . SSPX 의 이 자유주의 지도자들은 오히려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 적도 없을 것이다 . 그들은 자신들이 근대주의 로마에 침투하여 가톨릭 전통으로 전향시킨다고 여긴다 . 과연 그럴까 ? 그들은 가톨릭교회를 파괴하려는 자유주의 십자군이 얼마나 교활하고 심각한지 거의 알지 못한다 .
5 성비오 10 세회 내부에는 언제나 순응파와 저항파의 충돌이 있었는지요 ?
물론이다 . 르페브르 대주교는 우리에게 말해 주곤 하기를 , 바르비에 (Barbier) 신부의 19 세기와 20 세기 자유주의와 가톨릭교 충돌의 역사를 읽다 보니 2 차 바티칸 이전과 이후의 똑같은 충돌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이전에는 천주교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반면 , 이후에는 자유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 대주교가 살아 있는 한 , 대주교의 개인적인 자력 磁力 이 SSPX 가톨릭을 유지했지만 , 1991 년 대주교가 서거하자마자 ,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로마의 끊임없는 자력이 영향력을 다시 행사하기 시작했다 . 인내심을 가져야겠다 . 천주는 마귀나 타락한 천신들 혹은 타락한 성직자들의 책략에 당하시지 않을진저 .
원문 링크 : https://stmarcelinitiative.com/liberalism-in-a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