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년 7 월 29 일
제 837 호
천주를 찾는 영혼들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 .
천주를 멸시하는 영혼들에게는 애덕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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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주에 걸쳐 발행된 이 ‘ 코멘트 ’ 는 2 차 바티칸 , 즉 위기가 횡행하게 한 교회 공의회가 막을 내린 이래 현재 반세기가 넘는 기간을 교회가 살아남도록 보장할 수 있는 미래의 주교를 확보하는 중요한 문제에서 , 신식 성비오 10 세회와 르페브르 대주교의 원래의 성비오 10 세회 사이의 차이에 대한 소견을 제시했다 . 이것은 필연적으로 , 그러나 간단히 말해서 , 위기 자체에 대한 설명 , 즉 인간 중심의 공의회가 초래한 가톨릭 권위와 가톨릭 진리의 분열로서 제시하는 것을 의미했으니 , 이 인간 중심의 공의회는 이전 20 회의 모든 교회 공의회처럼 천주 중심을 유지했어야 했다 . 교회의 생존을 위해 도출돼야 할 추가 결론 몇 가지가 있으니 , 성직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와 관련된 결론이다 .
무엇보다도 천주교회는 진리 없이는 있을 수 없으매 , 이는 그 누구도 진리 없이는 자기 영혼을 구할 수 없는 연고요 ( 헵 11,6), 그 어떤 거짓이나 허위도 , 진리 자체이로되 하나이신 참 천주의 오직 하나인 참된 천당에 들 수 없는 연고이다 ( 요 14,6). 그러나 우리의 타락한 세상에서 진리는 인간을 요구하는 까닭에 권위 없이 존재할 수 없음이요 , 모든 사람은 원죄로 고통을 받아서 , 번번이 그런 요구에 맞춰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며 , 인간이 천주의 진리의 완전한 요구에 따라 살게 하기에 충분한 무류한 권위는 오직 천주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 . 천주는 이 구원의 진리를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맡기기로 하셨으니 , 그들은 모두 여전히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로 ,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 ( 마 16,23 / 갈 2,11 / 기타 등등 ).
자 , 천주는 천주의 교회와 그 진리가 세상 마칠 때까지 살아남을 것을 보장하시기 위해 ( 마 28,20), 일부 교황이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진리를 어기는 중대한 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영원으로부터 미리 보시고 , 틀리기 쉬운 인간 성직자들의 부족을 둘러싸고 작용하심으로써 그 생존을 보장할 천주 자신의 개입도 예견하셨음이 틀림없다 . 또 천주는 영원으로부터 1958 년 비오 12 세의 서거 이후 계속해서 연달아 6 명의 교황을 허락하시어 , 65 년 (1958 – 2023) 동안이나 계속되는 교회 최악의 위기를 초래하는 근대주의라는 근본적인 교리적 오류와 충돌케 하신 이후 , 이 위기를 종식하기 위해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개입하시리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예를 들어 , 중대한 경고 , 위대한 기적 및 커다란 징벌에 대한 가라반달 (Garabandal) 의 예언을 보라 . 그런데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 신성한 목자는 천주의 양 떼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신성한 목자는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 .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2023 년의 우리를 둘러 본다 .
우리는 엄청나게 다양한 가톨릭 단체 그리고 단체 조성을 목격하는즉 , 그것들은 , 일반적으로 말해서 , 각각의 그것들이 가톨릭 권위 혹은 가톨릭 진리에 부여하는 상대적 중요성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 . 그리고 진리는 불변하기에 , 권위와 진리 사이의 앙화로운 분열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은 공의회의 권위가 2 차 바티칸 공의회를 포기할 때뿐이다 . 그때까지 천주교인들은 교황을 위해 혹은 교황의 회복을 위해 절박하게 기도해야 함 이요 , 그래야 교황이 가톨릭 권위를 복구할 수 있으니 , 교황권은 오늘날 인간적으로 망가졌고 천주만이 그것을 고치실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때까지 속담의 말마따나 “ 고칠 수 없으면 , 참아야 한다 . ”
다음으로 , 공의회의 교황들이 권위를 질식시키는 한 , 가톨릭 신자들은 분열될 수밖에 없어서 , 일부는 권위 추구가 80%, 진리 추구가 20%, 다른 이들은 진리 추구가 80%, 권위 추구가 20%, 그 사이에 모든 가능한 조합이 있다 . 그렇지만 교황이 그렇게 타격을 받으면 , 양들은 필연적으로 흩어져서 그들이 어떤 조합을 고수하든 , 그들이 진정으로 가톨릭이기를 원한다면 , 천주는 눈에 보이게 그들을 참아 주시고 있다 . 그리고 천주교인들은 서로를 파문함으로써 천주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 대체로 , 천주 보시기에 위기를 끝내기에 적합할 때까지 , 서로 묵인함 ( 갈 6,10) 으로써 천주를 본받는 게 더 나을 것이다 . 진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요 , 그와 반대로 교회의 누군가가 그것을 보전해야 하지만 , 구실을 하는 권위가 없는 경우 , 가톨릭 신자들은 권위를 찾지 못한 것에 대해 그만큼 훨씬 덜 비난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
원문 링크 : https://stmarcelinitiative.com/two-kinds-of-bishop-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