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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함’ – 이단인가?

‘ 상냥함 ’ – 이단인가 ?

2023 년 2 월 18 일

제 814 호

‘ 상냥함 ’ 일랑 종종 고이 묻어둬야 한다 .

사람이 부드러우면 , 잔인함도 친절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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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비오 10 세회가 영혼들을 위해 했던 것과 여전히 행하고 있는 모든 선 善 에 대해 천주께 감사드리지만 , 성비오 10 세회는 르페브르 대주교 (1905-1991) 시절의 모습과 달라졌다 . 다음은 성비오 10 세회를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의 흥미로운 증언이다 .

몇 년에 걸쳐서 나는 현재 SSPX 신학교에서 육성되는 조직 및 이상적인 사제 후보에 대한 접근 방식의 변화를 알아차렸습니다 . 예를 들어 , 건전한 교리 (SSPX 가 여전히 표명하는 ) 와 교리의 표현 에 나타나 있는 ‘ 상냥함 ’ 을 구별할 때 내가 맞을까요 ? 오류와 싸우고 인간적 존중으로 말미암아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교리를 설파하는 SSPX 의 솜씨에 겉으로 보기에는 표현의 ‘ 상냥함 ’ 이 넘쳐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 그 ‘ 상냥함 ’ 은 구속하거든요 . 그 ‘ 상냥한 ’ 표현으로 많은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 타협했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 , 교리는 바뀌지 않고 있고 , 상황이 더 온유한 접근 방식을 요구하는 것일 뿐이라고 항상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죠 . 이 답변은 자유주의 낌새를 풍기지만 , 교리에 대한 충실함으로 말미암아 자유주의 낌새가 감추어진다면 , 타협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단순함의 상실이 있지 않을까요 ? 영혼은 그 단순함으로써 말하거나 행해져야 하는 것을 정확히 알거든요 . 나는 이 새로운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정확히 딱 꼬집어 말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 정통성이 끝내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나의 우려에 무언가 취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그리고 첫 번째 질문과 무관한 두 번째 질문이 있습니다 . 사제직을 위한 신학교 조직에서 , 신학생들이 진리의 모든 결과를 통찰하려고 사안의 표면 아래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 진가를 인정받고 격려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 최근 몇 년 동안 , SSPX 사제나 신학생들은 질문하거나 결정의 배후에 있는 추론을 이해하려고 하면 주의 인물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 극도의 신중함과 존경심을 보여주어도 , 무언가를 질문한다는 사실만으로 SSPX 당국의 우려를 삽니다 . 그리하여 개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면밀하게 조사를 받고 , 개성이 강한 사람에게 성소가 있어도 , 종도직 사도직 에서 더 고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

그래서 영혼을 위한 싸움보다 전통의 이미지에 초점 ( 적어도 SSPX 의 외견상 ) 이 더 있음을 감안하면 , 정치적 올바름 없이 , 효과적으로 그리스도왕을 설파하고자 하는 선한 사람들이 여전히 종도직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의심하는 내가 순진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나는 천주를 위해 삶을 바치고 싶지만 , 현재의 SSPX 접근 방식을 고려할 때 , 내 처지의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까요 ? 물론 천주는 원하시는 것을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고 ,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며 ,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 실제로 대결을 피하고 그 어떤 독립적인 분석도 단념시키는 정신으로 말미암아 전사 戰士 유형이 무력화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쭙는 겁니다 .

신앙의 원칙을 세속 영역에 적용하는 것은 확실히 한 개인의 영신 생활뿐만 아니라 , 사회 전체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

원문 링크 : https://stmarcelinitiative.com/niceness-here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