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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나스의 현실

2022 년 9 월 10 일

제 791 호

토마스 아퀴나스를 라틴어 원문으로 읽으시오 –

그는 정신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의사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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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는 500 년이나 앞서서 , 상식에 대한 하나뿐인 논문 ‘ 신학대전 Summa Theologiae ’(I, 85, 2) 에서 , 칸트 및 현대의 수많은 칸트 추종자들의 허튼소리를 논박했으니 , 그것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의 겉모습을 알 수 있을 뿐이다 . 칸트에 따르면 , 우리 인간은 사물의 실체는 실로 겉모습 뒤에 있어서 사물의 실체를 알 수 없다 . 있는 그대로의 사물 , 독일어로 ‘das Ding an sich’ 를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다 . 그런 경우 , 사물의 겉모습 뒤에는 ‘Ding an sich’ 가 있다는 걸 우리는 어떻게 안다는 걸까 ? 정말이지 , 칸트의 추종자들은 가정된 현실 자체 , 혹은 정신의 외부에 있는 현실 그 어떤 것에도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 현대 ‘ 철학 ’ 은 고양이가 사라지고 나서도 여전히 나무에서 씩 웃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로 들어갔다 . 잘 가시게 , 현실이여 . 어서 오시게 , 글자 그대로 ,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환상이여 !

아퀴나스는 두 가지 상식적인 논의로 가엾은 칸트를 경기장에서 물리친다 . 예를 들어 , 나는 초원의 말 馬 을 본다 . 이제 말은 분명히 내 머릿속에 있지 않음이요 , 말에 대한 일부 표현일 뿐이다 . 자 , 그것이 말 자체를 내다보는 창 窓 이어서 내가 아는 것이 말 자체인 것처럼 , 말에 대한 표현 으로 말미암아 내가 말을 아는 것인가 , 아니면 그 표현 자체가 말을 묘사하기는 하지만 말 자체는 전혀 구경시켜주지 않는 말 그림 처럼 내가 아는 것인가 ? 아퀴나스에게는 , 우리의 정신이 표현하는 바는 우리 정신의 외부에 있는 현실을 내다보는 창과 같다 . 칸트에게는 우리의 정신이 표현하는 바는 그림 과 같아서 우리는 그 뒤나 너머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 . 아퀴나스에게는 , 우리는 우리의 정신이 표현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알고 , 칸트에게는 , 우리의 정신이 표현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것 이다 .

아퀴나스의 첫 번째 논의 : 예를 들어 , 우리가 고양이의 미소만 알고 고양이 자체는 알지 못한다면 , 고양이나 정신의 외부에 있는 현실에 대한 지식이나 과학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 더 이상 우리 정신의 외부에 있는 현실에 대한 과학이나 지식을 얻지 못한다 . 그런데 만약 우리 정신의 외부에 있는 것은 전혀 모르고 , 우리 나름의 머릿속 표현만을 안다면 , 그것은 현실에 대한 지식의 종말이요 , 과학의 종말이다 . 확실히 그렇다 . 현대의 많은 ‘ 과학자 ’ 는 끝내 자신의 ‘ 과학 ’ 의 현실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는즉 , 왜냐하면 오늘날 세상의 거의 모든 것처럼 , 그는 칸트 철학에 빠져 정신이 어떻게 됐기 때문이다 .

두 번째 논의 : 만일 우리가 머릿속 표현만을 안다면 , 모든 표현이 참될 것인즉 , 진리는 우리의 정신과 정신의 외부에 있는 현실의 일치에 있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이 표현한 것 너머의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 우리는 우리의 표현이 그것과 일치하는지 일치하지 않는지를 말할 수 있는 , 외부의 그 어떤 현실에도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 그래서 우리 자신의 표현에 근거한 우리 정신의 모든 판단이 참된 게 될 것인즉 , 그것들은 그것들 자체와 일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 그리하여 바오로는 꿀이 쓰다고 판단할 수 있는 반면에 , 베드로는 꿀이 달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요 , 베드로와 바오로 둘 다 옳을 것이다 ! 그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의 모순된 의견의 충돌을 해결하되 각자의 표현을 넘어서는 객관적 현실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 여기서 비모순율 非矛盾律 의 법칙이 사라지고 , 토론의 가능성이 사라지며 , 모든 객관적 생각이 사라지고 , 근대 ‘ 철학 ’ 이 탄생한다 .

그리고 최고의 객관성 , 아퀴나스는 같은 논문에서 계속 설명하기를 , 실생활에서 우리 정신의 외부에 있는 대상의 바로 그 형태 는 그 대상에 실존을 부여하되 , 우리의 정신에 스며들어 , 우리의 정신에 그 생각의 존재 자체를 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 다시 말해서 , 우리의 정신은 정신의 외부에 있는 현실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정신의 외부에 있는 현실 없이는 전혀 기능하지 못한다 ( 적어도 우리의 정신이 생각하기 시작할 때 ). 그러므로 인간 사색의 기초야말로 객관적이어야 함이요 , 그런 기초 ( 알 수 있는 한 ) 에 의존하여 주관적 견해의 충돌을 해결할 수 있으며 , 그 어떤 것도 동시에 같은 관점에 있으면서 없는 것은 불가능한 이를테면 , 사물의 크기가 작으면서 동시에 클 수 없는 비모순율이라는 객관적 현실 속 법칙은 우리 사고방식의 기초이기도 하다 . 그런즉 현실에 대한 우리의 표현은 단언컨대 우리 정신의 외부에 있는 현실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창이요 , 가증스러운 칸트가 주장하듯이 , 그 너머 혹은 그 뒤에 있는 모든 현실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막아 현실에 대한 이해 , 객관적 사고방식을 모조리 무너뜨리는 그림이 아니다 .

원문 링크 : https://stmarcelinitiative.com/aquinas-re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