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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지 않은 주교

2024 년 11 월 9 일

한 주교는 자신의 양 떼를 지키되 양 떼가 배운 진리로써 그리한다 .

그 교리를 근대주의자들은 거짓말로 바꾼다 .

바로 한 달 남짓 전 , 1988 년에 교황의 허락 없이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성성된 4 위의 주교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 두개골 골절이 원인으로 , 지난 몇 년 동안 살고 있던 스위스 에콘 신학교의 돌계단에서 낙상하여 그렇게 된 것이었다 . 티시에 드 말르레 (Tissier de Mallerais) 주교 각하는 79 세였고 , 긴 생애 동안 대주교의 성비오 10 세회를 위해 상당한 공헌을 했다 . 그가 이 ‘ 체읍하는 골 눈물의 골짜기 ’ 을 떠난 것을 기념하는 뜻으로 , 이 ‘ 코멘트 ’ 에서는 그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감사를 담아 , 그 영혼의 안식을 위한 기도와 함께 , 적어도 세 가지 경우를 회상해야겠다 .

첫째 , 1960 년대 말 구상된 신학교의 첫해를 대주교가 시작하자 , 그 해 말에 첫 신학생 중 많은 이가 대주교를 떠나는 바람에 대주교는 미래가 없는 것처럼 자신의 프로젝트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 포기하지 말고 다음 학년도를 위해 다시 시도하라고 대주교를 설득한 것은 그 젊은 신학생 중 두 명이었다 . 한 명은 프랑스 성비오 10 세회의 핵심 구역의 실질적인 창립자 폴 오라니에 (Paul Aulagnier) 였다 . 다른 한 명은 장차 성비오 10 세회의 주교가 될 베르나르 티시에 드 말르레였다 . 교회와 세상이 미쳐가는 와중에 가톨릭 전통을 떠받치는 선봉장이 되는 것에 항구하도록 그 두 사람이 대주교를 설득하지 않았다면 , 오늘날 천주교회와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

둘째 , 1980 년대에 대주교는 교회의 프리메이슨 적들과 죽기까지 처절한 투쟁에 갇혔으니 , 프리메이슨은 인류의 세계적 배교에 대한 천주의 정의로운 징벌로 2 차 바티칸으로 말미암아 넘겨받은 교회의 권력 레버를 굳게 잡고 있었다 . 가장 큰 문제는 교리 였다 . 종교의 자유와 그릇된 에큐메니즘이라는 공동 오류로 , 둘 다 가톨릭의 모든 신덕도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 근대주의자들이 배신하고 있는 가톨릭 전통을 어째서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야 하는지를 밝히기 위해 교회의 참된 교리를 명확히 설명하고자 대주교가 크게 의지한 사람은 티시에 신부였다 . 영감은 대주교에게서 나왔지만 , 티시에 신부는 대주교의 실행 도구였다 .

그리고 셋째 , 2006 년에 티시에 주교는 미국 가톨릭 잡지인 The Remnant 에 기고하던 스티븐 하이너 (Stephen Heiner) 와 심도 있는 대담을 주고받았다 . 그 잡지는 틀림없이 그 보관소에 전문이 있을 것이다 . 하이너가 인터뷰를 마쳤다고 생각하자 , 주교는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 하이너는 필수적인 것 , 다시 한번 말하건대 교리 , 교황 베네딕토 16 세의 끔찍한 교리적 오류를 빠뜨렸다는 것이었다 . 인터뷰의 마지막 부분으로 미루어 , 주교는 라칭거 (Ratzinger) 신부가 ‘ 신학자 ’ 로서 경력을 쌓을 당시에 일찌감치 실제로 기록한 것을 직접 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 우리 중 몇 명이나 실제로 그런 수고를 했을까 ? 공정하게 말해서 주교는 하이너에게 말하기를 , 자신은 교황 라칭거가 감상적 어리석음을 버렸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 2006 년까지 라칭거가 아직 오류를 철회하지 않았다고도 말한다 . 다음은 1968 년에 출간된 라칭거의 독일어판 책 번역본 , 그리스도교 입문 (ntroduction to Christianity) 의 232-233 쪽 인용문이다 .

“. . . 신심에 대한 본문 일부는 십자가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은 천주를 인간의 희생 , 즉 자기 아들의 희생을 요구한 냉혹한 정의의 천주로 이해한다고 연상시키는 듯하다 . 그리고 우리는 공포에 휩싸여 정의로부터 도망치고 , 정의의 어두운 분노는 사랑의 메시지에서 신뢰를 제거한다 .”

다시 말해서 , 십자가는 너무나 끔찍해서 사실일 수 없었으니 , 이는 천주 성부께서 사랑하는 성자의 그런 잔인한 희생을 요구하셨을 수 없기 때문이요 , 그런 잔인함은 ‘ 사랑 ’ 이라는 새로운 공의회 종교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 이것이 순전한 근대주의이다 . 성 이냐시오가 가톨릭 수련의 제 1 주 전체를 할애하되 피정 참가자들이 그들의 죄가 얼마나 중한지만 깨닫게 하는 것과 대조해 보라 . 라칭거 신부는 신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 티시에 주교는 신덕을 지키고 있었다 . 티시에 – 하이너 인터뷰 전체를 보시라 .

고맙소 , 각하 . 평안함에 쉬어지이다 .

원문 링크 : https://stmarcelinitiative.org/category/eleison-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