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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제니친을 적용함

2023 년 6 월 24 일

제 832 호

좋은 예술은 영혼 안에서 자연적 가치를 도야하고 ,

초자연적 목표에 중요한 도움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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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 ‘ 코멘트 ’ 를 보건대 , 솔제니친이 주장하기를 , 예술은 인간의 영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여주고 , 현대의 예술은 현대의 영혼 속 영신적 공허함을 드러내며 , 그런 영신적 공허함은 언제라도 인간에게 좋은 조짐이 아니라고 했다 . 솔제니친 자신은 천주교인이 아니었고 , 사실 젊었을 때 그에게는 천주가 없었다 . 그러나 공산주의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8 년의 고통은 그에게 천주가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으니 , 천주는 많은 영혼에게 몹시 부족한 영신적 삶과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그에게 주셨다 . 많은 영혼은 동양에서 공산주의 치하에서 메말랐으되 , 서양에서도 역시 수 세기에 걸친 합리주의와 물질주의 ( 너무나도 많은 ‘ 천주교인 ’ 을 포함함 – 2 차 바티칸을 생각해 보라 ) 로 말미암아 활력이 고갈되었다 . 솔제니친의 교훈 몇 가지를 우리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자 .

첫째 , 예술에 대한 경멸 , 그 예는 오늘날 모든 신문이 시를 마치 산문인 것처럼 인쇄하는 것이다 ( 유물론자들은 항상 산문보다 삶에 더 많은 것이 있다고 암시하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 그러나 천주께서 주신 본성으로 말미암아 , 인간에게는 물질적 육체 외에 비물질적인 영혼이 있으니 , 영혼은 이야기 , 음악 , 그림 및 / 또는 조각품에 반응하고 그것들을 필요로 한다 . 이들 ‘ 예술 ’ 은 이야기를 쓰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 그림이나 조각품을 만들도록 천부의 재능을 타고난 인간들의 가장 고상하고 가장 영신적인 산물이다 . 이런 이유로 그들과 예술계는 곧잘 ‘ 예술가들 ’ 이 최고의 ‘ 영감을 받았다 ’ 고 말한다 . 어째서 무신론자들은 진정한 ‘ 예술 ’ 을 거의 창작하지 못하는가 , 또 케네스 클라크 (Kenneth Clark, 1903-1983) 경이 깨달았듯이 , 어째서 최근의 가장 위대한 ‘ 예술가들 ’ 과 ‘ 예술 ’ 은 항상 그리스도교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가 . 자 , 그 어떤 예술가도 솜씨를 발휘할 때면 통상적으로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 그런 까닭에 예술은 인간의 영혼이 담고 있는 것을 잘 보여주고 , 대중적인 이야기 , 음악 또는 그림은 대중의 영신적 삶을 드러낸다 .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은 , 자신들이 곧잘 현대의 예술에 대한 경멸의 압력을 받고 저지르듯이 , 이야기 , 음악과 시각 자료의 가치와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 솔제니친은 오늘날의 무의미한 이야기 , 귀에 거슬리는 음악 , 추한 시각 예술이 현대인들의 영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하여 매우 나쁘게 반영한다고 바른말을 한다 . 그는 그들에게서 격렬한 빛 , 혹은 서구의 소위 ‘ 문명 ’ 이라는 것의 파멸을 읽는다 . 바그너 (Wagner) 의 그랜드 오페라 신들의 황혼 (Twilight of the Gods, 1876) 을 비교해 보라 . 오페라를 보면 , 무대에서 온 세상의 질서인 신들의 발할라 (Valhalla) 산이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 내린다 . 하지만 현대의 부모는 흔히 자기 자녀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 그들은 그들 자신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을 것이다 . 따라서 록 ‘ 음악가들 ’ 은 , 햄린 (Hamlin) 의 피리부는 사나이 (Pied Piper) 가 음악으로 햄린의 자녀를 훔친 것처럼 , 사실상 부모들로부터 마음껏 자녀의 애정을 훔친다 . 너무 늦게 , 부모들은 ‘ 음악 ’ 을 통해 쓰레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자신들이 자녀에게 얼마나 악한 표양을 보였는지 깨달을 수 있다 . 그렇지만 누가 어떻게 감히 음악에서 쓰레기를 말하리오 ? 그것은 현대 음악이 광범위하게 선율 , 화음 또는 박자의 가치나 감흥이 비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음악이 덕성을 함양시키지 않는다면 , 타락시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음악은 , 그 자체의 힘으로 , 어느 한쪽을 수행해야 한다 .

자 , 억지로 좋아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음악에는 한계가 있다 . 내가 쓰레기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 돌연히 품위 있는 음악을 좋아할 수 없다 . 반면에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사랑할 수 없다 . 그래서 내 영혼을 고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은 더 좋은 음악을 알기 시작하는 것이다 . 최고의 음악은 그레고리안 성가이다 . 다음으로 낮은 단계는 다성 多聲 음악이고 , 그다음은 클래식 음악이다 . 모든 것 중 가장 낮은 것은 현대 음악 , 재즈 , 팝 , 록 그리고 랩의 순서로 내려간다 . 왜 그럴까 ? 모차르트가 말하길 , ‘ 멜로디 ’ 는 ‘ 음악의 영혼 ’ 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 그레고리안 성가는 순수한 선율이다 . 랩은 선율이 전혀 없다 . 이 하향 사다리의 주요 중추적 지점에는 클래식 음악가 베토벤 (1770 – 1827) 이 있으니 , 베토벤은 18 세기의 많은 질서와 19 세기의 많은 열정을 독특하게 결합한다 . 그는 한편으로는 차분한 영혼을 만족시키기에는 너무 강렬하고 격렬하다 . 반면에 너무 잔잔하지 않아서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거의 혹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매 , 현대의 젊은이들은 마음의 동요가 너무 심하여 너무 많은 질서를 견디지 못한다 .

그렇지만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 최고의 입문은 BBC 의 2003 년 영화인 베토벤의 에로이카 (Beethoven’s Eroica) 일 것이다 . 영화는 1804 년 비엔나 귀족의 개인 궁전에서 초연된 ‘ 에로이카 ’ 교향곡을 재구성한 것이다 . 그 시대에 완전히 새로운 이 획기적인 음악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반응이 있으니 , 기병대가 돌격하는 소리에 전율하는 집안의 여인 , 귀 기울여 듣기와 유혹을 번갈아 하는 부인의 입주 가정부 ; 교향곡의 길이와 독창성으로 말미암아 얼떨떨하지만 , 자신도 모르게 깊이 감동한 체코의 장군 ; 음악에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유명한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 ; 기타 등등 . 영화는 이러한 인간적 맥락과 도처에 혁명이 배어 있는 교향곡 3 번의 역사적 배경 모두를 매우 잘 보여준다 . 영화는 youtube.com/watch?v=UtA7m3viB70 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 강력히 추천한다 .

원문 링크 : https://stmarcelinitiative.com/solzhenitsyn-appli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