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명의 신학생 – II
2022 년 11 월 5 일
제 799 호
‘ 선량한 ’ 가톨릭 성직자들이 어찌 그다지도 잘못될 수 있을꼬 ?
현대화의 영향력이 너무 세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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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 ‘ 코멘트 ’ 에서 ‘ 성비오 10 세회 ’ 라고 알려진 것의 대신학교 4 개교에서 청년 79 명이 전통적인 가톨릭 사제직에 대한 소명을 시도하기 위해 새 학년도에 입학 등록을 했다는 소식이 언급되었다 . 이것은 가톨릭교회 전체에 좋은 소식임이 틀림없으니 , 결국에는 서품을 받는 모든 전통 사제가 모든 가톨릭 영혼에 전통적인 성사를 공급하는 원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실제로는 특히 두 가지 이유로 ,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닐 수도 있으니 , 두 가지 모두 기도가 필요하되 , 지난주에는 그중 한 가지만 언급되었다 .
두 번째 이유는 설명이 거의 필요치 않지만 , 매우 현실적인 , 전자 제품이다 . 프란츠 슈밋버거 (Franz Schmidberger) 신부가 1982 년부터 1994 년까지 SSPX 의 총장이었을 적에 , 들리는 바에 의하면 , 한 평신도가 총장에게 전자 장치가 총장의 사제들을 망칠 거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 물론 그는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아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는 , 거룩한 정결을 해치는 유혹의 늪을 언급하고 있던 것이요 , 이것은 스마트폰이 발명되기 훨씬 전인즉 , 스마트폰은 몇 년 후에 등장한다 . 사실 , 그런 기계가 발명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가 그런 것의 유혹에 초연하다면 , 거의 초인적인 존재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 물론 , 천주와 천주의 모친은 어린 소년이나 소녀를 데리고 하수구의 미로를 구석구석 다니신들 장미 향기를 풍기게 하실 수 있지만 , 그들 각자에게 부여하신 자유 의지에 대한 천주의 존중을 감안하면 , 그런 사례는 규칙이 아니라 예외일 것이라고 우리는 합리적으로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렇다면 79 명의 청년 중 몇 명이나 사제직으로 가는 길에 그런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을는지 ? 모든 충실한 가톨릭 사제는 천주의 위대한 선물이다 . 우리는 79 명의 성소자 모두를 위해 기도해야 할진저 . . .
지난주 ‘ 코멘트 ’ 에서 소개된 첫 번째 이유로 말할 것 같으면 , 그것은 육신의 정결이 아니라 , 훨씬 더 중대한 신앙의 영신적 정결을 포함하는 까닭에 덜 명료하다 . 한 독자는 암시하기를 , ‘SSPX’ 의 대신학교 4 개교처럼 , 가톨릭 공동체에 훨씬 더 전형적이듯 , 만약 ‘ 저항단 ’ 이 적절하게 체계화되었더라면 , 오늘날의 이른바 가톨릭 ‘ 저항 ’ 운동이 성소자를 끌어들이는 데 더 성공적 (79 명처럼 ) 이었을 것이라고 논했다고 했었다 . 지난주에 이 ‘ 코멘트 ’ 는 오늘날에는 비정상적으로 , 체계 에 대한 강조가 더 중요한 것 , 즉 가톨릭 신앙 으로부터 주의를 흩뜨리기 쉽고 , 이것이 언급된 4 개교의 신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임을 두려워들 할 수도 있다고 답하기 시작했다 . 여기에 두 가지 각각의 논점이 있으며 , 그중 두 번째 논점은 다음 주의 ‘ 코멘트 ’ 까지 기다려야 하리라 .
지난주 오늘날 교회 위기의 본질은 가톨릭 권위와 가톨릭 진리가 갈라진 2 차 바티칸에 있다고 했으니 , 2 차 바티칸 때 공의회에 모인 교회의 최고위 당국은 ‘ 교회 ’ 현대화를 위해 공식적으로 교회 전통을 저버렸다 . 이는 그때부터 천주교인들은 근대주의자들에게 ‘ 순종 ’ 하고 전통을 버림으로써 권위에 매달리든지 , 진리를 고수하여 겉으로 보이는 교회 ‘ 당국 ’ 에 저항하든지 하나를 택해야 함을 의미했다 . 그렇지 않으면 교인들은 양극단 사이라면 어디서든 부분 진리와 부분 권위의 여러 가능한 조합 중 아무거나 택할 수 있다 .
르페브르 대주교로 말할 것 같으면 , 그의 선택은 로마의 권위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이로되 전통을 버리지 않는 것과 일치할 것이었다 ( 가톨릭 진리는 전통과 일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1988 년에 전통을 돌보기를 로마 당국이 암묵적으로 거부함으로써 대주교를 궁지로 몰았을 때 , 마침내 대주교에게는 교리 ( 진리 ) 가 외교 ( 끝내 미덥지 못한 권위를 향한 ) 보다 우선했다 . 그리하여 대주교는 ‘ 자살 작전 ’ 이었을 것을 실행하여 부정직한 권위에 ‘ 순종하는 대신 , ‘ 생존 작전 ’ 을 펼쳐 주교 4 위를 축성함으로써 로마인들에게 도전했다 . ‘ 생존 작전 ’ 은 20 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대주교의 회에 교리 ( 진리 ) 의 으뜸 지위를 보장했지만 , 그다음에 대주교의 후계자들은 성비오 10 세회의 공식 승인을 얻으려고 애씀으로써 , 회를 신식 성비오 10 세회 (Newsociety) 로 변모시켰으니 , 이는 진리 ( 신앙의 수호 ) 보다 권위 ( 로마의 인정 ) 를 선호함으로써 그리된 것이었다 . 저들은 대주교의 마음과 영혼 , 즉 교회의 마음과 영혼인 진리를 영웅적으로 수호하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 저들의 신식 성비오 10 세회는 더 평판이 좋고 더 편안할진 모르겠으나 , 더 이상 순교자의 것이 아니다 .
원문 링크 : https://stmarcelinitiative.com/79-seminarians-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