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폴 오라니에여, 평안함에 쉬어지이다

2021 년 5 월 29 일

제 724 호

우리는 오늘 폴 신부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앙을 누리고 있다 .

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우리 모두 기도해야겠다 .

———————————————————————

여러 해 동안 성 비오 10 세 회 창립 및 건설에서 르페브르 대주교의 결정적인 버팀목이었던 까닭에 , 우리 모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이전의 성 비오 10 세 회 사제가 3 주 전에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 내 생각에 폴 오라니에 (Paul Aulagnier, 1943 – 2021) 신부는 저 때 만큼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왜냐하면 , 대주교의 교리는 매우 충실했고 그의 지도력은 너무 인간적이어서 오라니에 신부는 심히 가톨릭다운 방식으로 역할을 다하도록 영감을 받았으며 , 아주 뛰어난 대주교가 1991 년에 서거하자 다수의 우리에게는 더 이상 그다지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 사실 , 오라니에 신부는 2003 년에 성 비오 10 세 회와 헤어졌고 , 그 후 다양한 형태로 가톨릭 전통을 위해 계속 일했을지 모르지만 , 그는 분명히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주교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

오라니에 신부의 성소는 앙화로운 제 2 차 바티칸공의회의 즉각적인 여파로 중심부까지 흔들렸을 때 로마에 있는 유명한 프랑스 신학교에서 시작되었다 . 몇몇 신학생들은 대주교가 스위스 프리부르 (Fribourg) 에서 한데 모으려 애썼던 신학교를 천주교의 피난소로 삼아 도망쳤지만 , 고통스러운 시기로 인해 신학교는 시작부터 험난했고 , 대주교는 첫째 해가 지난 후에 포기하다시피 했다 . 이 부분이 신학생 오라니에와 티시에 (Tissier) 가 연합하여 대주교에게 버텨달라고 설득하여 교회 역사에 들어간 지점이다 . 그러자 더 많은 성소자가 도착했고 , 그때부터 죽 신학교가 번성했다 . 그에 힘입어 그 암흑기에 대주교는 더 나은 날을 위해 교리 , 미사 , 성사 , 사제직과 같은 가톨릭 전통을 구할 것인즉 , 에콘이 없었더라면 이들이 오늘날 어디에 있을까 ? 우리가 오라니에 신부와 티시에 주교에게 신세를 진 주요 빚은 다음과 같다 .

그는 1969 년에 대주교에게로 왔고 , 1971 년에 대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 1973 년부터 1982 년까지는 성 비오 10 세 회의 제 1 보좌로서 , 1976 년부터 1994 년까지는 프랑스 관구장으로서 대주교의 오른팔이었다 . 그는 18 년 동안 온 프랑스를 끊임없이 누비고 다니며 대주교와 함께 소수도원 , 학교 , 수도회 및 다른 사업의 연결망을 구축했으니 , 그것은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성 비오 10 세 회의 존재와 영향력의 기반이 되었다 . 이 때에 그가 모든 방면에서 영혼들에게 분별과 격려를 전하면서 , 제일 행복하고 많은 열매를 맺었노라고들 말할 것이다 .

오라니에 신부는 대주교로부터 받기만 하지 않았다 . 1970 년에 그는 에콘에 사제 양성 신학교와 성 비오 10 세 회를 설립하고 , 서품을 받을 사제들의 종도직을 세우도록 대주교를 격려했지만 , 이후에 공의회 종교에 내맡겨질 공식 교회가 성 비오 10 세 회의 직무를 위한 어떤 틀도 거부할 게 뻔했다 .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

대주교가 최초의 에콘 출신 중요 사제단의 역사적 서품식 직전이었던 1976 년에 , 그것은 대주교가 마침내 이 결정적인 행동을 취하기 전에 잠시 망설이며 두드린 오라니에 신부의 문에 다다랐고 , 드디어 대주교를 결심시킨 것은 오라니에 신부의 격려였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 그들 중 어느 한쪽이 용기가 꺾였다면 사제직과 교회는 오늘날 어떻게 됐을까 ?

그리고 1988 년 5 월 말 , 대주교가 프랑스 중부에서 수많은 가톨릭 전통의 주요 옹호자들인 사제와 수녀들을 한데 모아놓고 , 로마의 공식 허가 없이 6 월에 전통을 위한 주교 성성을 추진해야 할지를 심사숙고했을 때 , 수녀들은 남자 ( 원문 그대로 ) 에게 용감했지만 , 거의 모든 사제는 연기할 것을 권했다 . “ 로마의 철학과 신학은 더 이상 가톨릭이 아니오 . . . . 나는 저들이 우리에게 내거는 합의가 걱정스럽군요 . . . . 로마의 꼼수가 두렵단 말이오 . . . 우리는 근대주의 로마에 먹힐 위험이 있습니다 ,” 라고 말한 오라니에 신부를 빼놓고 . 그때 신부가 옳았다 . 그는 오늘날에도 옳다 .

친애하는 오라니에 신부여 , 대단히 고맙구려 ! 신부님이 평안함에 쉬기를 바라며 , 신부님의 것이 큰 상급이 되기를 바라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