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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제니친이 말한다

2021 년 4 월 3 일

제 716 호

러시아인들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고통을 겪음으로써 배웠다 .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 그리고 천주께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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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맞아 , 여기 알렉산더 솔제니친 (Alexander Solzhenytsin) 의 유명한 1983 년 템플턴 상 수상 연설 (Templeton Address) 이 대폭 요약돼 있다 .

내가 어렸을 적에 , 사람들은 1917 년의 러시아 혁명 때까지 인도해 주시던 천주를 잊었다고 말했죠 . 1983 년에 이제 나는 어른이고 , 여전히 이 한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 그것은 20 세기 전체를 제 1 차 세계 대전으로 시작하는 모든 범죄로 요약됩니다 . 제 1 차 세계 대전은 유럽 지도자들의 무신론적인 격분 ( 이를테면 , 독가스를 무기로 만듦 )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 제 2 차 세계 대전도 마찬가지입니다 . 유럽인들은 녹초가 됐습니다 . 평화는 핵폭탄이 아니라 굳센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 우리는 종말에 너무 익숙해져 왔습니다 . 도스토옙스키 (Dostoyevsky) 는 말하기를 , 거대한 사건이 준비돼 있지 않은 우리를 덮쳤고 , 세상은 마귀에게 사로잡힌 후에야 다시 구할 수 있으리라고 했죠 .

그럭저럭하는 사이에 마귀는 세계적으로 승리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 1917 년이 되니 러시아의 지도층에서는 신앙이 멸절했고 , 노동 계급에서는 신앙이 위태위태했습니다 . 하지만 옛날에 러시아는 정교회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 물질주의가 아닌 신앙심이 대중의 사고와 인격을 형성했고 , 그들의 삶을 구성했습니다 . 그러나 17 세기의 분열과 표트르 대제의 개혁은 종교를 약화했고 , 19 세기의 세속주의는 지도층을 오염시켜 , 1917 년이 되자 종교가 무력해졌습니다 .

도스토옙스키는 말합니다 . 혁명은 항상 무신론으로 시작하지만 , 무신론이 공산주의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악의적이었던 적이 없었다고요 . 1920 년대에 러시아에서는 교회와 국가의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참된 그리스도교 순교자들로 넘쳐났는데 , 예를 들어 아이들은 부모와 모든 종교에서 잡아 뜯겨 나갔습니다 . 스탈린은 히틀러를 적대하는 러시아 애국심을 되살리기 위해서만 종교에 호의를 보였고 , 브레즈네프는 서양을 속이려고 종교적인 척했지만 , 흐루시초프는 공산주의와 광적인 레닌의 하찮은 후계자들이 종교를 얼마나 깊이 증오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 그러나 이 미친 그리스도의 박해자 중 그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 공산당의 압제하에서 러시아인의 천주에 대한 인식은 이제 날카롭고 심오합니다 . 탱크와 로켓으로도 결코 그리스도교를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

서양에서는 종교가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위협받습니다 . 중세 시대에는 세속주의가 내부에서 생겨났고 , 탱크나 로켓보다 더 위험합니다 . 그것의 이상은 생명 , 자유 , 그리고 나 자신의 행복 추구보다 높이 날지 못합니다 . 선과 악은 조롱의 대상이고요 . 인간의 마음은 잊으라 합니다 . 그 결과 , 악이 도처에 있습니다 . 서양은 항상 발을 헛디디고 , 젊은이들을 잃고 있습니다 . 언론은 예수와 마리아를 모독합니다 . 그런 경우 , 무슨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자유로이 하기를 자제해야 할까요 ? 사회가 나더러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마당에 , 어째서 내 사회를 싫어하면 안 되는 걸까요 ? 자본주의의 결점은 인간 본성의 결점과 일치하지 않나요 ? 예를 들어 , 돈을 추구하다 보면 탐욕의 대죄에 빠지게 되는 것과 같이요 . 자본주의는 평등을 확립한다고 자랑합니다 . 그렇지만 그것은 영신적 가치가 빠진 , 노예의 평등이 아닌가요 ? 그리고 그게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요 ? 그러나 내가 더 ‘ 자유롭다 ’ 는 것은 내가 더 맹목적으로 증오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요 ? 돈이나 풍부한 물건들로는 구원이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

사랑이 없으면 , 삶과 예술은 멸망합니다 . 서양에서는 그것이 천주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손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납니다 . 동서양 모두 천주를 잊고 있습니다 . 하지만 우리 전 존재의 열쇠는 인간 하나하나의 마음이 선과 악 사이에서 택해야 하는 일상의 선택입니다 . 모든 것을 사회에 다시 집중시키는 근대 이론은 파탄에 이르렀음이 판명되었지만 , 우리는 그들의 거짓말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 천주께로 돌아가지 않는 한 , 우리는 문제에서 벗어날 길을 절대로 찾지 못할 것입니다 . 적은 내 안에 있습니다 . 우리 자신의 목을 매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

인간의 삶은 천주께로 가는 길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 이는 단지 물질의 법칙 , 즉 물리 과학 그 이상입니다 . 우리는 천주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우리의 존재를 누립니다 . 천주는 단테 (Dante) 의 ‘ 신곡 (Divine Comedy)’ 전체 중 마지막 행인 “ 사랑이 해와 다른 별들을 움직이더라 ” 입니다 . 19 세기와 20 세기는 잊으세요 . 소위 계몽주의는 완전한 실패작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