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이해가 빠른 경제학.

너무나 많은 힘있는 사람들, 혼란스럽게 되고 혼란을 야기하는, 이 “경제학”에 기존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 때에, 오스트리안 스쿨 오브 이코노믹스의 상식 “칠계명”( jsmineset.com에서 ),을 맞닥뜨리는 것은 위로가 된다. 아래에 서술된 것처럼 첫 두 개는 기초적인 것이다. 마지막 다섯 개는 오늘 날 많은 정부, 의심할 여지없이 정치적 압력하에서, 첫 두 개를 지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가 해당되는, 다섯 가지 정책을 비난한다. 여기 그것들이 있다, 각 각 해설이 있다. —

1) “벌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계속적인 식량, 의복과 주거에 대해 지출할 필요가 있기에, 모든 사람은, 가족은 정부는 반드시 다소간 벌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기꺼이 사기를 원하는 재화나 용역을 다른 지역(또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 제공하거나 생산해서만 벌 수가 있다.

2) “버는 것보다 많이 쓸 수 없다”. 아무도, 아무 가족, 정부도 영원히 버는 것보다 더 쓸 수는 없다. 안그러면 채권자가 멈출 때까지 빚이 쌓인다. 그러면 빚은 갚아야 한다, 그것은 고통스럽다, 아니면 부도가 난다, 그것은 아주 끔찍하다.

3) “어떤 정부도 너무 많은 규제를 만들 수 없다”. 정부는 공동선을 위해 규제를 만들어야 하지만, 만약 그것이 너무 많은 규제를 만들어 시민들의 생산적 활동을 제한한다면, 그것은 그 행위를 진작하기 보다 제한함으로써 공동선에 해를 끼친다.

4) “어떤 정부도 너무 많이 세금을 매길 수 없다”. 유사하게도 정부의 너무 많은 과세는 생산적 활동을 저해하거나 심지어 마비시키어 지나친 과세는 정부의 세금 수입을 감소시킬 정도다.

5) “어떤 정부도 불황을 탈출하기 위해 지출할 수 없다”. 불황에서는 국가의 모든 백성들이 적게 벌고 적게 쓴다, 어떤 정부도 소비와 지출을 회복시키기 위해 단순히 자신이 지출(역자 주: 경기부양적 지출)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그 지출할 여분의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정부는 빌리거나 (2번 보라) 세금을 걷거나 (4번 보라) 뿌려댈 엄청난 돈을 찍어내야(6번 보라) 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모두 엄격한 한계가 있는 법이다.

6) “어떤 정부도 불황을 탈출하기 위해 돈을 찍어댈 수 없다”. 정부는 단순히 더 많은 지폐를 찍어대거나 컴퓨터 키를 더 많이 두드림으로써 쓸 여분의 자금을 조성함으로써 불황을 해결할 수도 없다. 왜냐면 만약 돈의 공급이 증가함에 상응하는 재화의 생산이 없다면, 너무 적은 재화를 좆는 너무 많은 돈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종국에는 돈을 함께 파괴할 때까지 가격을 인상시키는 원인이 된다.

7) “어떤 정부도 불황을 탈출하기 위해 고용할 수 없다”. 정부는 실업문제를 단순히 비생산적인 정부 직원으로서 실업자들을 고용하거나(1번 보라) 더 많은 실업수당을 지급함으로써 해결할 수도 없다(5번 보라).

어쨌거나, 만약 “민주적인” 사람들이 그렇게도 맘몬을 숭배하여 그들이 맘몬의 수하들에게 매수된 정치인들에게 투표를 계속한다면, 만약 이 돈만 아는 인간들이 그들의 정부를 인수한다면 그들은 자신을 원망할 뿐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그 결과가 같은 사람들의 살아있는 비참이라면, 천주님께서는 그들이 죄지은 그 자리에다가 그 벌을 내리지 않으실까? 그분께서 단순히 생산, 경제학과 돈 또는 오스트리안 스쿨을 위해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어떤 다른 방법으로 그들이 그분을 떠나게 될까? 또는 이런 것들은 그들에게 현세에는 필요하지만, 그것들 위에 초월하여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한?

키리에 엘레이손.